2018.10.21
속리산 산행
새벽3시 부산출발
아침7시속리산 법주사 도착후
산행시~작
30여년전 속리산 문장대 산행후 두번째방문...
아~~~감회가 새롭다.
출발하면서 속리산등산코스를 검색을 하다 보은 속리산세조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속리산 세조길은 법주사에서부터 세심정까지이며 완전 산책길수준이며 산책로도 국립공원답게 잘 정비가 되어 있었다..
신상주참외휴게소를 마지막으로 속리산아이씨를 통과하니 앞이 제대로 안보일정도로 안개속이었다..
새벽안개 헤치고 달려달려오니 중학교때 수학여행으로 와본 정이품송이 눈에 들어온다..
88년도에도 왔으나 어떻게 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짤막짤막하게 한토막씩은 기억이 남아 있으니 추억산행으로 오늘한번 해 보련다..
법주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 103호
수령이 약 600년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모양이 아름답고 큰 소나무이다
조선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대 임금이 타고 있던 가마가 아랫부분 가지에 걸리게 되어
임금이"나뭇가지에 연이 걸린다"하고 말하자
이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위로 들어 올려 가마가 무사히 지나가도록 했다고 한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세조가 그 자리에서 지금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정2품의 벼슬을 내려서 <연 걸이소나무>또는 <정이품송>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80년대 까지는 그래도 그런대로 보기 괜찮앗다고 한다..
최근 1993년 강풍과 2004폭설피해로 가지가 부러져서 수세가 약해진거였다..
도착하니 7시쯤..
이른시간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베낭을 메고 우리와 함께 걷는다..
매표소를 지나면 세조길이 시작된다..
세조가 직접 속리산을 왕래하던 길이다..
2016년 9월에 처음 개통하여 지금은 어마어마한 탐방객들이 모여든다..
세조는 속리산지역을 자주 왕래하였는데 가장 유명한 행차는 총 3번이었다고 한다.
첫번째는 당시 복천암에 거주하고 있던 신미대사를 수차례 찾아가 훈민정음 보급에 대해 논의한 것이고
두번째는 과거 고려태조 왕건이 속리산에서 불경을 읽다 할아버지의 유적을 찾기 위해 속리산 능선을 따라 말티재길을 걸었는데
훗날 고려태조를 크게 흠모하던 세조가 진흙으로 된 말티재 길에 얇은 돌을 놓아 정비한 뒤 그 길을 그대로 따라 걸었던 것이고
마지막 세번째는 말년에 피부병에 걸린 세조가 요양차 온 것이다..
그외에도 당시 백성들의 고충을 직접 드디 위하여 속리산 지역을 자주 왕래하였다고 전한다..
침엽수와 활렵수가 어우러진 속리산 오리숲길이 계속된다..
''오리숲길은'' 속리산 공용주차장에서 법주사까지 참나무와 소나무,전나무들로 우거진 산책로를 말하며
그 길이가 '5리'(약2키로)하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그림을 보고 가니 2키로가 아니라 2백미터같았다..ㅋ
좌우로 수령이 백년이 넘는 참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길이었다..
충북의 아름다운 길로도 손꼽히는 속리산 입구에서부터 법주사입구까지 주변은 단풍이 초절정을 달리고 있었다.
이른아침이라 사찰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탬플스테이하는 보살님들만 왔다갔다 하시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고 하니
30년전의 모습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무척 궁금하기도 하고 설레였다..
안다는건..
한사람을 안다는 건
또 다른 세계와 만나는 일
한 사람을 안다는 건
미지의 세계에 발 내딛는 것처럼 가슴 설레는 일
한 사람을 안다는 건
폭풍 속으로 들어가서 맨살로 그 바람을 맞는 일
한 사람을 안다는 건
온몸 나를 드러내는 치명적인 일...
난 아직도 한 사람을 정확히는 안다고 말할수 없다..
근데 그 한사람은 내몸에 점이 어디에 있고 뭐가단점이고 뭐가 장점인지 정확히 알고 있으니
내가 그 한사람한테 조련이 되어있다..
어떨땐 기분이 상당히 나쁘다가도 없으면 상당히 불편함을 느낀다..
오늘 그 한사람이 선택한 산행코스
30년만에 왔으니 감회또한 새롭겠지
난 두번정돈 온것 같은데 버벅대지 말고 대답잘 해야 한다..ㅋㅋ
금강문을 들어선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절간이 마치 다른세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속리산하면 딱 떠오르는게 있다..
바로 저 큰 청동불상이다..
말티고개 너머 산골깊숙이 산속에 자리 잡은 법주사는 우리나라 미륵 신앙의 요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요즘은 거대한 불상이 많으나 이곳 법주사의 청동미륵보대불은 60년대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웅대하여 많은 관광객이 대불을 보러 갔었다..
그래서 중학교 수학여행을 여기로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ㅇ유일한 목조탑 팔성전이다..
마당에 아무도 없으니 여기저기 꼼꼼히 딜다보고 간다..
지금의 청동미륵대불은 겉을 금박을 입혀 화려해졌고 금빛 웅장한 모습으로 사찰을 굽어보고 있다..
지금도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아 구불구불 말티재를 넘어 찾아가는데 과거에는 이름 그대로 속세에서 멀리 떨어진 속리산,그곳에 자리 잡은 법주사는
진흥왕때 의신조사가 창건했다고 하며 서구에서 구해온 불경을 나귀에 싣고 돌아와 이곳에 머물렀다 즉.불법이 머물렀다고 하여 법주사가 되었다한다..
법주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는데 팔상전은 국보 제55호다.
부처님의 모습을 나누어 모신 큰 집으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목조 오층탑이다..
단 하나의 못도 쓰지 않고 5층의 목조탑을 건축한 귀한 문화재다.
아침 햇살을 받으니 아우라가 장난이 아니네..
광명하소서..
이곳만큼은 단체관람은 불가란다..
조용하게 기도하는 장소이다보니 단체학생들이나 단체관광객들이 올라오면 아무래도 시끄러워 기도정진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싶어서...
학교에서도 관람하는 문화와 예의 에티켓을 교육을 시켜야 할것같다..시키고 있긋제?
팔상전과 미륵대불
마누라의 첫마디가..""어?합천황매산영암사지터에 있는 쌍사자석등하고 완전 똑같이 생깃는데...그건 뭐지?!
집에가서 다시한번 영암사지터 쌍사자석등을 찾아봐야 겠다고 한다..""
혼자가라...나 앙가
국보 제5호인 쌍사자석등은 하나의 큰 암석으로 쌍사자를 세우고 그 위에 석등을 배치한 미적 구성이 뛰어난 문화재로 우리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자 석등이란다..
두마리의 사자가 맞대고 있으면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들고 있는 형태이다.
8각으로 높직하며 네곳에 창을 내어 불빛이 새어나오도록 하였다..
사자를 조각한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매우 특수한 형태를 하고 있다.
넓다란 8각의 바닥돌 위에 올려진 사자 조각은 두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래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는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아랫돌과 윗돌에는 각각 연꽃을 새겨 두었는데 웃돌에 두줄로 돌려진 연꽃무늬는 옛스러운 멋을 풍긴다.
사자는 현재 남아있는 사자조각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 머리의 갈기 다리와 몸의 근육까지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네이버사전이 이렇게 적어놨드라..내가 뭐 알겠나--
아래는 30년전의 법주사의 추억사진들
ㅋㅋㅋ30년전에도 산친구인 문영태란 친구와 석등앞에서 포즈를 잡았네..
옛날과 다른점은 철조망이 철거된거 말고는 그대로였다..
저 친구소식이 무척궁금하여 수소문해봤으나 도저히 알길이 없었다.
혹시 아시는분 연락주세요..
2009년까지 풍산금속에 근무했었다함.
팔상전앞에서 폼잡고 앉아서...
마누라도 사자석등앞에서 포즈
난 대웅보전과 석등안내판을 잡고 포즈...
와~~저땐 머리카락이 왜저렇게 많아?!ㅋㅋ
마침 탬플스테이 하는 보살님들이 마지막 회향식을 하나 봅니다..
특별한 행사도 구경하고..
세조길을 가다보면 상수원저수지가 나온다..
기온차가 심하니 물안개도 피고
가을가을한 산속으로 빨려드간다..
군데군데 이렇게 멋찐 휴게소도 있고...
본격적인 세조길인가보다..
법주사에서부터 시작해서 능안교, 태평교 탑골암갈림길.목욕소 세심정까지의 길이다.
길이는 3키로 왕복 두시간정도면 충분히 천천히 걸으면서 힐링장소다..
길이 잘 정비되어있어 뽀쬭구두만 아니면 다녀올수 있을 정도였다..
데크도 잘 되어있고
안전시설도 잘 해놓고
세심정까지는 무난한 산길이다..
산길에서 만난 첫번째 휴게소
고도를 높이니 점점 붉어지는 단풍들.....
두번째 휴게소...보현재
이 휴게소는 경상도의 집이다..
이짝은 충북이고 저짝은 경북상주고
마지막 휴게소...
전 메뉴를 포장도 해준답니다..
능선을 올라서니 서늘한 바람이 먼저 반겨준다..
세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리산 문장대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펼쳐진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속리산은 맑고 청량한 산이다..
속세를 떠난 피안의 세계다
구름속에 갈무리되어 마치 하늘나라처럼 신비스러운 유토피아,곧 극락의 세계가 속리산이다..
속리산 문장대의 옛 이름은 구름이 가득서려 있는 곳이라는 뜻의 운장대 였다..
하늘나라처럼 신비스러운 유토피아 인지 아닌지 올라가 보자..
극락세계로 올라가는 천국의 계단처럼 느껴진다..
밑을 보니 아찔하다..
올라오니 벌써 겨울이다..
주위단풍이 다 떨어지고 서리꽃이 군데군데 있다..
30년전 속리산산행의 추억을 오늘과 비교해 더듬어 봅니다
세월무상을 느낍니다
그때도 이여자네요 ㅠㅠ
아날로틱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ㅋ
오늘 사진
여전히 변함이 없는 산천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ㅋㅋㅋ저땐 사자머리가 유행이었는갑다..
세월이 빨라도 너무 빠르다는걸 세삼 또 느낀다..
여고동창입니다..
지금껏 절친으로 이번 유럽여행도 함께 간단다..
지금과 다른점은 팬스가 철조망에서 나무로 바뀌었네...
저 멀리엔 아직까지 운해가 있다..
이곳 문장대를 중심으로 동쪽 천황봉에서 서쪽 관음봉까지 연결되는 산봉우리를 비롯해 능선의 남쪽과 북쪽으로 전개되는 넓은 사면지역을
한방에 조망할수 있다..
온 산을 품안에 두고 있는 문장대다..
속리산은 산봉우리와 능선 곳곳에는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이곳 문장대는 큰 바위가 산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는 데 마치 그 모습이 하늘에 맞닿아 있는 느낌을 받는다..
문장대는 바위 꼭대기에 100명이 함께 올라설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함을 자랑한다..
아래 30년전 속리산사진
위는 오늘..
똑같은 위치에서 찍은사진이다..
최고봉인 천황봉을 비롯하여 비로봉 문장대 문수봉 신선대 관음봉 등 아홉개의 높은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어서 원래는 구봉산이라 불리다가
신라시대때부터 속리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백두대간이 태백산을 지나면서 내륙으로 꺾이면서 흐르는 중앙부에 위치한 속리산은 백두대간의 중간지점이다..
속리산의 최고봉은 천황봉이지만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오는 곳은 이곳 문장대이다..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문장대..
가을맞이단풍산행을 즐기려는 인파가 너무 많이 올라온다..
그 인파를 피해서 얼른 내려왔다..
특전사들이 훈련으로 법주사에서 문장대까지 구보로 올라오드라..
물론 여군들도 함께 구보로..
문장대 바위바닥은 움푹움푹파인자국이 마치 거대한 공룡 발자국처럼 보였다..
이것도 오랜세월 풍화작용으로 인한 것이라 한다..
11시가 되니 여기저기 모여앉아서 점심을 먹기 시작한다..
완전 도떼기 시장이 따로없을 정도로 비잡았다..
우리도 얼른 잽사게 자리를 잡아서 점심을 먹을려고 하는 순간 마누라의 당황한 모습..하지만 태연한척..
수저는 커녕 젓가락하나도 없었다..
뭘로 찍어먹을까 옆사람한테 젓가락있냐고 물었다..
안되면 되게하라..
나뭇가지를 잘라 칼로 빼빠질하여 먹으니 원조나뭇젓가락이다..
밥을 먹은후 정신이 혼미했는지 관음봉 신선대 쪽으로 가야할길을
올라왔던 길로 다부내려가는 불상사를 겪었다..
그래서 같은 길을 다른느낌으로 가 볼려고 무척 애를 썼다..
속리산은 대피소가 없다..
그래서인지 군데군데 이렇게 휴게소처럼 장사하는 음식점들이 산속에 3군데나 있드라..
복천암을 지키고 있는 수령이 어마어마한 나무
속리산은 세조와 관련된 설화가 많다..
왕위를 쟁탈한 후 어린조카 단종을 죽음으로 내몬후 세조는 깊은 마음의 병과 몸에 생긴 피부병으로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세조는 심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먼저 속리산으로 비접을 떠났다..
법주사 본찰에서 문장대로 가는 도중에 있는 복천암에서 세조는 두 가지 지병을 치료하고자 기도를 했다
그 암자가 바로 여기다..
3일간 기도를 하고 세조의 스승인 신미대사로부터 3일 동안 설법을 들은 후
샘물을 마시고 마음의 병을 고치게 되었다.
그러나 몸의 피부병은 낫지 않아서 다시 오대산 월정사로 가서 병을 고쳣다고 한다..
내려오니 상수원저수지산책길에서 스님이 이렇게 노래부르며 콘서트를 하고 계셨다..
한참을 머물렀다..
다시 법주사경내로 들어가본다..
아침엔 보이지 않던 단풍들이 내려오니 보인다..
가을이 점점 깊어간다..
가을 하늘은 높고 파란물감을 풀어놓은것처럼 새파란 색깔의 바다같기도 하다..
아침에 텅텅비어있는 마당 사람들로 가득차다..
그러고보이 마누라옷도 금맥끼를 칠한 금박이네...
대불도 노란옷
보리수나무가 단풍으로 노랗게 물들었다..
일명 염주나무라고도 부른다..실제로 염주로 만든다.
부처님이 보리수아래에 앉아 깨달음을 얻으셨다 해서 절에가면 보리수나무가 없는 절이 없다.
속리산법주사에는 국보도 많고 보물도 많아서 노천에 있는 박물관이라고도 부른다..
많은 국보와 보물도 중요하게 봐야하지만 눈에 가장 띄는 곳에 있지만 잘 보지 않고 무심코 지나가는 것이 있으니 바로 보리수나무다..
보리수 나무는 대웅전 앞에서 두 그루가 높고 크고 늡늡하게 지켜주고 있다..
법주사에 있는 이 보리수는 인도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보리수아래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쉴 수 있도록 의자가 준비돼어 있어서
관광객들에겐 꼭 필요한 것 같다..
잠깐이라도 앉아서 부처님의 뜻을 기리고 작은 깨달음을 얻어 가라는 바램일 것이다..
우리집에 보리수액기스 담아놨는데 액기스주스를 먹어도 깨달아 지지 않을까..ㅋ
오후가 되니 덥다..수많은 사람들이 가을속으로 파고든다..
친구들과 모임시간에 맞춰서 대충 구경하고 음식점이 즐비한 입구을 빠져나왔다..
보은대추가 유명하다는데 한봉다리 사까..고마갑시다..
가까운 밀양대추 사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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