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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서유럽에있었다..10(베네치아1)

by 나그네김 2019. 1. 8.

11.1

 

오늘은 물의도시 베니스여행이다..

새벽에 일어나 호텔식당에서 아침식사를 기다리며 어제 내가 몸소 체험한 2층전체전기를 퐉 나가게 한 에피소드를 늘어놓았다..

모두들 내 이야기를 경청하였다..

전기 코드가 우리나라와 달라 변환어댑터를 꽂아야 하는데 순간 까먹은 것이었다..

지배인 아저씨가 나를 향해 엄지척을 해 보ㅇ이면서 갠찮다.,라는 신호로 나를 안심시켰다..

이탈리아는 물사정 그리 좋지않다..석회가 많은 물로 샤워를 할라니 샤워한것 같지가 않고 머리결도 푸석푸석했다..

씻기 싫어하는 경희는 샤워를 이틀동안이나 생략했다..

아침 컴컴한 호텔에서 전용버스까지 캐리어를  한바탕 굴린후 베네치아로 향했다..

오늘부터 임팀장이 마이크를 든다..

 

 

아드리아해로 가는 버스안에서 임팀장은 베네치아 역사이야기를 했다..

30분쯤 달렸을까..버스는 곧 자유의 다리를 건너고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빗물을 식수로 이용했으나 지금은 육지의 물을 끌어다 쓴다..

자유의 다리밑으로 육지와 베네치아를 연결하는 상하수도 배관이 설치돼 있다..

상황이 이러하나 베내치아의 물 값과 화장실요금은 꽤 비싸다..

 

드디어 산마르코 광장에 도착했다.. 빅토리오엠마누엘레2세의 조각상이 우뚝 서 있었다..

이 조각상은 이곳뿐만 아니라 이틸리아 본토 여러곳에 세워져 있다.

이탈리아를 하나의 국가로 통일시킨 장본인이다..

 

어제까지 베네치아로 들어오는 모든차량들이 통제였다고 한다..

비가 사상이래로 많이 왔기때문에 도시의 반이상이 잠겼다고 한다.

우리나라뉴스에도 나올정도로 기상이변이라고...

 

118개의 섬과 408개의 다리와 117개의 운하로 이루어져 있는 베네치아

베네치아는 '계속해서 오라'는 이탈리아 말이다. 베네치아는 BC2세기경

베네치아가 로마였을때, 눈에 띄지 않는 조그만 촌락이었다.. 베네치아는 우리나라가 삼국시대였던

450년에 기초가 세워졌다.

패망한 로마제국은 395년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열된다.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은 콘스탄티노플(터기의 이스탄불)을 수도로 하여 천년간 명맥을 이어나가다가

1453년 오스만 투르크에게 먹힌다. 천년 동안 비잔틴제국은 로마, 북쪽의 게르만,

 동방의 이슬람 문화가 혼재 되어지는데 이 비잔틴 문화를 잘 볼 수 있는 곳이 베네치아다..

베네치아는 먼 옛날부터 상당히 부유한 도시다. 1096년부터 1270년까지 7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의 결과로 교역로가 동방으로까지 확대되고

이슬람의 과학기술과 학문을 흡수하여 항로를 개척하고 상업과 무역을 발달시켰다..

특히 1202년에 시각장애인 엔리꼬 단돌로 총독이 제 4차 십자군을 비잔틴제국으로

보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어마어마한 전리품을 베네치아로 가져온다.

당시 엔리꼬 단돌로 총독의 연세 일흔!!!헉

 

피렌체에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면 베네치아에는 세레니시마 가문이 있었다..

이 가문은 1202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려는 엔리꼬 단돌로 총독을 도우면서 세력을 급속히 키워나간 후,

서유럽, 비잔틴제국, 동방의 이슬람을 상대로 중계무역을 벌여 부를 축적, 베네치아를 부강한 해상왕국으로 만든다.

베네치아는 15세기부터 이탈리아를 장악해간다.  1450년 전성기에 베네치아 상인의 배는 3천여척, 곤돌라가 2만대에 달했고,

예술,건축 등등 각 분야에서 르네상스도 화려하게 꽃피어난다.

그렇게 아주 잘 나가다가 1797년 나폴레옹의 침입에 의해 자치권을 잃게 된다. 같은해 우리나라는 한창 천주교인들을 때려죽이던 시기였다..

나폴레옹은 베내치아를 옛다,받아라 하고는 오스트리아에게 던져주었고, 베네치아 공화국의 주인이었던 세레니시마 가문은 몰락한다.

그러다 1866년 베네치아는 결국 통일 이탈리아에 합병된다.

 

(비 그치기를 학수고대하면서 처벅처벅 뒤따라 오는 임팀장....ㅋ

물이 차 오르면 저 뒤로 간이다리로 다녀야 한다고 했다..

저 간이다리도 잠길때가 있다고 했다..)

 

와~~~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임팀장은 우산 비옷을 미리미리 챙기라고 일러둔다..이런상황이라면 오늘도 통제되지않을까 임팀장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현지 가이드가 있다고 했다..나는 현지가이드가 가슴 두근거리도록 절세 미남이기를 바랫는데 어찌 인물이 겸양을 과하게 추구하는 것만 같았다.ㅋㅋ

30살이 채 안된 베네치아로 부모님과 이민와서 살고있는 총각이었다..

아 소렌토 피렌체에서 코오똑한 남자에 다이드상같은 오빠야들 한테 한눈 판다고 여행을 제대로 못했는데 말이다..

오늘은 이리되면 한눈 팔 일이 없는 것이다..

ㅋㅋ 아 오늘의 여행지에 대한 몰입도가 어마어마하게 높으리라는 것을 나는 예감하고 있었다..ㅋㅋ

 

비가 오면 모든것이 불편하다..첫째 사진찍을일이 참으로 난감할것이다..

 한손은 우산들어야제 이럴때 신이 원망스럽다.. 팔을 3개쯤 만들지 못했을까..

입구에서 20분쯤 기다렸을까..들어가라는 신호가 왔다..

버스에서 내리니 비가 더 많이 왔다..우린 우산은 있으나 비옷이 없었다.. 이러다가 열발짝도 못가서 옷을 다 버릴것 같았다..

2유로 한다는 비옷을 단체로 사서 입었다..노랑 분홍 파랑,

비옷을 입는사이 일행들을 놓치고 말았다.. 아 어디로가지?우왕좌왕하는순간..

""언니직찐언니직찐"" 하면서 손가락을 가리킨 사람은 비옷장사를 하는 동남아 총각이었다..

한국인이 얼마나 많이 오면 한국말로 안내를 할까...한참을 웃었다..

 

 

가이드총각 소개를 듣지 못해서 이름을 모른다..최 머라 했는데..

최씨는 목전에 닥친 일정부터 우리에게 설명했다.

.잠시후 이부두에서 그러니까 우리나라 흥남부두 보다 조금 못한 이곳 부두에서 배를 타고 산마르코 나루터까지

가는데 20분 소요된다고 했다..최씨는 또 말했다..

여기는 그분들이(소매치기) 우굴우굴하다고 특히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오늘 우리가 관광할 베네치아는 극히 일부분 이라고 했다..그렇지만 너무 넓어서 길잃어버릴 확률이 꽤 높다고 했다..

만약 길을 잃어버렸더라도""절대 집안에 우환 있는듯한 표정 절대 짓지 마세요..""ㅋㅋ

무조건 산마르코 산마르코 라고 하면 가르쳐 준다고 했다..

 

쭉 찢어진 작은 눈매에서 뿜어져 나오는 우렁차고 과격하고 단호한 말투에는 지난 사흘동안 로마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에 눌리고 치인

우리들을 구원하려는 수작이 깃들어 있었다..더불어 말도 너무 빨라서 금세 뭔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28세 나이치고는 너무나 어른스러웠다..듬직해보여서 좋았다..

비가 그칠기미가 보이질 않는다..너무나도 거추장 스런 복장에 열심히 가이드의 역사이야기만 열심히 들었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아드리아의 수평선에서 미적지근한 비구름이 끼어있었고 우리가 탄 여객선은 바닷물을 힘차게 치면서 산마르코 나루터로 향했다..

35명 일행과 어느새 많ㅇ 가까워져 있었다. 먼저 다가가 기념사진을 촬영해 주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도 나누고

제2의 인생을 꿈같은 이탈리아에서 시작하는 신혼부부를 보면서 내 제주도 신혼여행을 떠 올렸고,

70을 넘긴 나이에 손자와 함께 베네치아를 찾아 생애 마지막 여행이될것 같다면서 열심히 동영상촬영을 하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는데

 내 나이의 위치가 아직은 희망적으로 느껴져 안도하기도 했다,.

그래. 내 소망인 세계여행의 기회는 무궁무진한 거야!!!!

 

 

 

 

(손자와 같이온 70대어르신과 정년퇴직기념으로 유럽여행온 50대아저씨가 함께 찍혔다..)

 

 

산마르코 광장 입구에는 커다란 두개의기둥이 서 있다.

하나의 기둥에는 날개 달린 사자상이 조각돼 있는데,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인 산마르코를 상징한다.

또 다른 기둥은 악어를 짓밟고 서 있는 성 테오도레 상을 이고있다.

성 테오도레는 베네치아의 유일한 수호성인이었다가 산 마르코의 유해가 도착하자 함께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으로 받들어진다.

마르코는 마가의 이탈리아식 이름인데 마가복음을 쓴 성인이다..

로마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체포했을때,마가는 벌거벗은 채 도망을 친 전력이 잇다.

마가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교회활동을 하며 최초로 아프리카에 기독교를 전했다.

마가는 68년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한다.이로부터 수백년 뒤.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2인1조가 되어,

당시 이슬람교의 무슬림이 지배하던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마가의 유해를 훔쳐온다.

그들은 완벼 절도를 위해 무슬림들이 꺼리는 돼지고기 밑에 유해를 감추는 지혜를 발휘했다.

828년, 마가의 유해를 안전하게 베네치아로 옮겨오자 베네치아는 경사가 났다.

뭐,828년 같은 해에 우리나라에서도 해상왕 장보고가 완도에 해군기지와 무역기지인 청해진을 설치하는 경사가 있었다만,

암튼 베네치아 사람들은 마가의 유해를 아주 길하게 여겨 유해를 모실 훌륭한 성당을 짓는다.

바로 지금의 산 마르코 성당이다.

지금까지 마가의 유해는 산 마르코 성당에 잘 모셔져 있다..

우리는 가이드최씨를 따라 산 마르코 성당으로 갔으나 문이 굳게 잠겨져 있었다..

 

(산마르코광장과 종탑)

 

산마르코 성당의 종탑이다.높이 99미터.9세기 무렵에 세워졌다.. 바닷바람에 손상을 자주 입어 몇차례 재견했다.

1902년에는 갑자기 와르르 무너지는 바람에1912년에 다시 지었다..

산 마르코 광장을 소개한 가이드님은 여기서 자유시간을 주었다..무려 3시간이나

베네치아도 페렌체와 마찬가지로 미로같은 좁은 골목길이 너무나도 많다.골목길은 하나같이 복사판 처럼 닮았다.

자칫, 홀로 떨어져 나가면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다라고 몇번을 강조했다..그럴땐 무조건 산 마르코 산마르코 라고 하면 된다했다..ㅋㅋ

 

광장 한 가운데 우물이 있다고 했다. 옛날 이곳 선조들이 사용하던 공동우물터라고 했다 이곳은 바다 위에 지어진 도시여서 물이 귀했다.

식수는 빗물이었다 사람들은 땅속에 스미는 빗물이 우물쪽으로 한데 모이도록 했고, 모인 빗물이 정화될 수 있도록 우물바닥에 모래와 자갈을 깔았다

비발디가 세례 받은 '산 지오반니 인 브라고라 성당'이 아주 소박하게 있었다..

그리고 그 성당 오른쪽에 비발디의 생가가 있었다..

베네치아가 낳은 인물 중에는 비발디 외에도 '동방견문록을 남긴 '마르코 폴로'가 있다..

 동방견문록은 후에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의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마르코 폴로(1254~1324)가 원나라를 여행할때, 우리나라 고려는 원나라의 속국으로 압제를 받던 시기였다..

우리 고려는 마르코 폴로에 의해 처음으로 유럽사회에 알려진다..

 

비발디 생가앞...

 

물이 자꾸 차오르는중,,,

간이다리가 쫙 설치돼 있었다..

난 간이다리위로 걷는것 까지는 안하고 싶었다..하지만 상상은 해보았다..

 

 

 

현재 베내치아의 운송및 이동수단으로는 수상버스와 수상택시가 있으나 그 옛날에는 곤돌라가 아주 중요한 교통 수단이었는데.

곤돌라는 베네치아 사람들의 발이었다고 했다..

가이드씨는 수많은 섬들 가운데로 나 있는 S자의 대운하를 가리켜보였고 대운하에서 그물처럼 뻗어나간 수많은 

소 운하들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선을 그어 보였다..

자 여기까지 설명하고...

오늘은 비가 많이 오는 관계로 곤돌라는 운행금지라 하고 수상택시를 직접 타 보고 체험을 할 수 있다고 빨리 서두른다..

입구에서 우산을 받쳐들고 또 역사이야기를 해준다..

베네치아 태생의 오빠 한분을 소개 해 주셨다..희대의 흘레머신 '카사노바'오빠였다..

 카사노바는 지성과 남성미를 두루 갖춘 문학가, 철학가,법학박사이기도 했다.

가이드씨는 대뜸 카사노바(1725 4.2~1798.6.4)가 상대한 여인이 몇 명이나 되는 아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침묵 할 수 밖에 없었다..우리에게 '카사노바'라 함은 나이트클럽을 지칭하는 대명사 정도가 다였으니까..뭐 무식하다해도 어쩔 수가 없다.

그의 활동무대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8천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었고 우리보다 2백년이나 먼저 와서 살다간 카사노바를 어찌 알아먹을 것인가.

카사노바로 부터 은총을 받은 여인들의 수는 수천을 헤아렸다고 한다.

잘 나가도 너무 잘 나갔던 카사노바는 너무 잘 나가는 바람에 감옥까지 나아가게 된다. 죄목은 성풍속을 너무 어지럽힌 풍기문란죄..

 

카사노바는 두칼레 재판소에 회부되어 형을 집행받고 두칼레 재판소와 감옥을 잇는 '탄식의 다리'를 건너 조리돌림을 당하는 대신 감옥에 모셔지게 된다.

이 감옥은 한번 들어가면 절대로 바깥 공기와 햇뱇을 볼 수 없는 지하감옥으로써.

감옥이 생긴 이래 살아서는 바깥으로 나온자가 단 한 분도 없는 악명높은 감옥이엇다.

감옥이 악명으로 이름을 떨치던 어느 날, 감옥의 악명에 먹칠을 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만, 탈옥수가 한 명 생겨났던 것이다.

그가 바로 다름아닌, 잘 나고 잘난 카사노바 오빠였던 것이다. 도대체 그는 어떻게 해서 감옥을 빠져나올 수가  있었던 것일까?

 여기서 우리에게 가이드씨는 문제를 냈다.우리는 또다시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무식해도 어쩔 수가 없다. 우리는 은장도를 가슴에 품고 지고지순한 일부종사를 위해 목숨을 받친 여인들의 후손이 아니겠느냐.

 

 

 

 

 

 

 

탄식의 다리얖에서..)

 

하루 이틀 사흘,,,,,감옥에 갇힌 카사노바에게 사형집행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것을 너무나 안타깝게 여긴 간수장의 아내.그녀는 카사노바를 보전케 하는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 만반의 준비가 돼 있었다..슬기로운 그녀는

어느 날 지헤를 발휘한다. 간수장이 퇴근하여 왔을때 갖은 아양을 다 떨며 술을 퍼 먹인 것이다. 그녀는

만취하여 깊은 잠에 빠진 간수장의 옆구리에서 감옥의 열쇠를 빼내는데 성공하고 카사노바가 있는 감옥으로 달려간다.

"""나를 가둘때 내 의지와 상관 없었으니 나 또한 너희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곳을 나가노라."""..메모를 남기고

 

로맨티스트이자,자유인이자.모험가이자,책을 마흔 권이나 펴 낸 저술가인 카사노바가 말없이 떠날손가.

그는 이 멋진 한마디를 남겨놓고 이웃나라 프랑스로 야반도주한다

이야기를 마친 가이드씨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꼭 우리가 간수장의 아내이기라고 하다는 표정으로...

""어딜 가나 여자들이 문제야 문제...ㅋㅋ

 

내가 죙일 거창하게 베네치아의 역사에 대해 고상하게 떠들어 봐야 여러분 하나도 기억 못합니다.. 아무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다 집어치우고 여러분이 꼭 알아야 하는 배시간이나 똑똑히 알고 가세요..ㅋㅋㅋㅋㅋ

 

임팀장님!!!물이 차오르면 어떻게 되요?

 

 

 

 

참으로 멋지고 진풍경이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