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2018.10.31
오늘은 로마에서 북쪽 피렌체로 가는 일정이다..
일어나보니 날씨는 변함없이 먹구름과 안개와 비가 내린다..
오늘은 모든짐을 다 싸고 이 호텔을 떠나는 날이다..
아침일찍 조식을 먹고 나는 조금 일찍 나갔다..마지막 로마에서의 공기를 실컷 마셔보기로 했다..
이미 기영쌤이 나와있었다..
난 호텔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겼다..
기영쌤이 같이 찍자고 했다..
기영쌤이 말했다.. 이호텔 302호가 얼마전 포루투칼 축구선수 세계에서 몸값이 젤 비싼 호나우도가 묵었던 방이라했다..엥...
원정경기와서 경기장과 가까운숙소를 이용했다고 하니 와~~이걸 왜 인자 갈차주냐고 했더니 기영쌤도 오늘 아침에 이탈리아지배인이 말해주더란다.
로마의 아침날씨는 비가 개이니 완전 환상적이었다..
버스에 올라탔다..기영쌤이 마이크를 잡더니 피렌체역사이야기가 시작됐다..
워낙 하고싶은 말이 많고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피렌체이야기:
피렌체는 교통의 요지다. 밀라노로 가거나 베네치아로 가거나 간에 피런체를 거치게 된다.
로마에서 피렌체까지는 버스로 네다섯 시간정도 소요된다.
버스차창 밖 저 멀리 산맥하나가 우리를 따라 북쪽으로 달린다.
길이 1400키로미터 아펜니노 산맥이다. 이 산맥은 우리와 서로 평행선으로 가다가 피렌체에서 만난다.
아펜니노 산맥이 지나는 토스카나 부근에 철, 구리. 주석이 난다.
아름다운 구릉지대를 지난다.살림이 부유한 사람일수록 구릉의 고지대에 거주한다. 구릉의 최고 꼭대기에 성채가 있다.
옛날 이곳은 지역간에 싸움이 잦았고 지금까지 그 격전지의 흔적인 성채가 많이 보인다.
완만한 구릉지대는 모두 양지다. 구릉이 완만하니 좀체 음지는 생기지 않는다.
우리가 달리는 도로 양쪽에 경작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아래쪽엔 포도밭이고 위쪽엔 올리브 나무가 자라고 있다.
밭에 양떼가 보인다.농부들은 경작지에 양떼를 풀어서 키운다. 양떼가 풀을 먹고 배설을 하면 양떼를 다음경작지로 옮긴다.
배설을 하고 나면 또 다음 경작지로 옮기고 또 옮기기를 거듭한다.
경작기의 배설물은 땅에 스며서 땅을 기름지게 한다. 이탈리아 농부들은 이렇게 양떼를 이용해 잡초를 제거하고 거름까지 해결한다.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보다 더 만은 가지 수의 농산물이 나는데 농산물이 풍부하여 가격이 싸다.
채소나 과일을 사면 푸짐하게 담아준다고 한다. 영쌤이 말했다.
우리가 지겨워 할때쯤.. 우리에게 기영쌤은 퀴즈를 낸다.
이탈리아의 경제에 제일 크게 기여하는 종목을 '보기'에서 골라내는 퀴즈인데
정답을 맞히는 사람에게 산지에서 직접 만든 천연올리브비누를 주겠다고 했다.
1.기계공업 2.관광 3.패션 4.농업
보기를 들은 좌중들은 2,3,4번에 손을 든다. 1,번은 딱 두명이었다..어떤 여사님과 칠십넘은 할아버지이시다
이런포도밭과 올리브나무밭이 피렌체 갈때까지 양옆으로 펼쳐져 있다..
시작과끝을 알수 없을만큼...
기영쌤이 정답을 말한다. 정답은 1번.이탈리아 근대에와서 월등히 앞선 기계공업으로 경제부흥을 일으켯다고 한다.
창밖으로 끝도 없이 펼쳐진 농경지를 실컷 입이 마르도록 예찬하다가 갑자기 퀴즈를 낸 탓에 4번을 찍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농업이 이탈리아 GDP 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위 보기에서 꼴찌란다..
정말 부러운 나라 이탈리아였다..
버스는 로마와 피렌체의 중간쯤에 정차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였다..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우리나라 휴게소개념과는 전혀 달랐다..
드디어 인구 37만의 피렌체에 도착했다.꽃의 도시 피렌체는 도시전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게문화유산이다.
피렌체는 르네상스를 꽃 피운 르네상스의 발상지로 피렌체가 잘 나갔을 시절에는 인구가 백만이었다고 한다.
피렌체의 첫인상은 활력이었다..자동차와 빌딩이 아닌 사람위주의 활력, 밝고 아늑하고 잔잔한 활력!!
시내로 가기전 미켈란젤로언덕에서 바라보는 피렌체전경을 구경시켜주겠단다..
시간은 딱5분 주겠단다..
내리자마자 뛰기 시작했다.ㅋㅋ
우아~~~~상상그이상이었다..여행채널에서 봐오던 그 모습 그풍경들이 내눈앞에 쫙 펼쳐져 있었다..
멀리 두오모성당과 종탑, 유명한소설 '냉정과열정사이'배경인베키오다리
피렌체전경을 멋지게 감상할 수 있는곳이 바로 이 미켈란젤로언덕인것이다..
모든피로가 다 날아가는 순간이다..
아기자기한 동산에 동그랗고 세모난 나무들이 부풀어 있었고
나무들 사이로 돋아난 집들이 부드럽게 흐르는 아르노 강을 굽어보고 있었다..
하늘색과 버무려진 하양구름이 피렌체의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고
낮게 내려온 하늘은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하늘색 크레파스색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이곳 풍경이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힘들었다..
배고푸다고 아우성이 날즈음에 기영쌤이 식당으로 우릴 몰아넣었다..
메뉴는 정체를 알수 없는 소스에 버무린 스파게티와 빵 그리고 누린내 향이 진한 돼지괴기 양념 요리였다..
먹어보니 먹을만 했고 돼지고기는 쇠고기인줄 착각할만큼 부드러웠다..
우리는 현지식이 몸에 안맞아 통 먹지 못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너무 잘 먹어서 탈이었다..ㅋㅋ
멋진 유럽여행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미리 알고 왔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샤프하거나 미켈란젤로의 조각 같거나 다비드상의 오빠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유모차를 태운 아기는 꾸벅꾸벅 졸고있었고 아이의 부모님은 츄리닝차림으로보아 이동네 사람?
장난감같은자동차가 좁은 골목길을 다니며 관광객들 놀라지 않도록 운전하는 저 매너에 반했다..
앞으로 무얼 보게 될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1분앞도 예측할 수가 없는 골목길이었다..
날씨는 마냥 좋았고 골목길을 지나가는 동네사람들이 이뻤고 단단한 돌길이 든든했고 두께 50센티가 넘는, 집들의 담벽이 좋았다..
피렌체식당앞에서
좁은 골목의 건물들 사이로 무언가 거대한 것이 놀랄만한 무엇이 우리쪽을 향해 자꾸만 기웃기웃거렸다..
갑자기 기영쌤이 말했다..
"여러분 다들 약속하실래요?
''예''''하고 큰소리로 답했다..
"그럼 모두 눈을 감으세요.. 제가 뜨라고 할 때까지 뜨시면 안됩니다..자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또 "예"하고 답했다.
"그럼 눈을 감은채 앞으로 열 발짝만 세며 갑니다..자, 하나,둘,셋,넷...."
"자 멈추시고 눈을 뜨세요""
눈을 떳을때 피렌체 두오모(산타마리아 델 피오레성당)가 버티고 서 있었다..
우리가 이곳으로 직진해 올때 우측으로 뻗은 골목길마다 힐끔힐끔 보이던 그것의 정체였다..
세례당, 두오모, 돔, 죠토의 종탑이 한 셋트였다..
한눈에 담을 수가 없어서 아래 위로 보고 좌우로 목고개를 돌려서 보았다..
여백의 미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건축물들, 건물의 외벽을 에워싼 문양은 전부 천연 대리석의 천연색이었다.
대리석이 가진 천연 빛깔의 조합만으로 이러한 문양장식을 완성시킬 수가 있는 것일까.
눈으로 보고 있어도 보이는 것이 다 거짓말 같았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크레파스를 칠한 것도 아니요 붓으로 페인트로 칠을 한 것도 아니었다..
두오모는 알놀포 디 깜비오가 설계하고 감독했다..(우리는 이미 비티칸 대성당에서 아르놀포 디 깜비오가 만든 조각, 베드로상을 구경 한 바 있다.)
이 두오모 4종 세트는 1296년에 첫삽을 떳고 완성은 1446년에 한다.
첫삽을 떤 1296년 우리나라는 고려시대였고 두오모가 완성되던 1446년 우리나라는 세종대왕이 위대한 훈민정음을 반포하셨던 때다..
두오모 꼭대기의 붉은 돔은 브루넬레스키의 작품이다.
제작기간은 1420~1436년이다.지면에서부터 돔 꼭대기 까지의 높이는 106미터다..
이 동네에서는 이보다 더 높은 건축물을 세우는 것을 금지하는 것으로써 ''브루넬레스키의 돔''한 예우를 깍듯이 하고 있다..
돔의 무게는 3만 7천톤 4만 개 이상의 벽돌이 쓰였다..
1419년 이 거대한 팔각기둥에 누가 지붕을 올릴 것인가?
두오모 위에 돔을 얹기 위해 '아르테 델라라나'라고 하는 모직 의류상 조합이 콘테스트를 실시한다.
서로 라이벌 관계인 브루넬레스키와 세례당의 동문과 북문을
제작한 기베르티가 경합을 벌였고 브르넬레스키가 콘테스트에서 우승한다.
하지만 담당자들은 기베르티에게 브르넬리스키의 보좌 역활을 맡긴다.
당시 세례당 북문을 제작중이던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가 받는 보수는 똑 같았다..
이것에 자존심이 상한 브루넬레스키는 몸이 아픈 척 핑계를 댔고 돔 제작 프로젝트는 기베르티에게 맡겨진다.
하지만 거대한 돔을 만들기에는 기베르티 자신의 역량이 턱없이 모자람을 깨닫고 기베르티는 두손을 들고 만다.
이렇게 해서 돔 제작은 전적으로 브루넬레스키에게 맡겨진다.
브루넬레스키는 돔 제작을 위해 도르래를 발명하고 원근 계산법을 만드는 등 르네상스 건축의 혁신을 이룬다.
두오모 파사드(전면)는 19세기에 최종 완성된다.여인의 아름다운 란제리 레이스 자락 같은 장식들,,
이것들은 옷감도 아니고 밀가루도 아닌 무거운 대리석으로
만든 것이다.
이 거짓말 같은 두오모 저 꼭때기의 돔을 제대로 볼려면 또 어떻게 해야 하나...고민에 빠진다.
하늘높이 날아오르거나 이 높은 종탑 꼭대기에 올라가면 된다.죠또의 종탑이다.
1334년 죠또의 설계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종탑은 죠또가 죽은 뒤 1359년에 완성된다.
414개의 계단을 걸어서 올라갈 수 있게 돼 있다. 높이 84.7미터이다.
죠또는 이미 만들어진 두오모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카라라, 시에나 등지에서 생산되는 청록색,
붉은색 대리석을 사용했다..
두오모 맞은 편에 '산 죠반니' 세례당이 있었다..
두오모 광장의 4종세트 중 제일 오래된 건물인데 단테가 '잘 생긴죠반니''라며 칭찬했던 곳이다.
세례당은 서쪽을 제외한 세 방향마다 남문 북문 동문이 있다.
동문은 1452년 기베르티가 제작했다. 동문은 구약성서 내용을 표현한 부조로 채워져 있다.
후에 '천국의 문''이라고 미켈란젤로가 이름 붙였다..
현재 동문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어딘가에 따로 모셔져 있다..
문 바로 위쪽에는 예수님께 세례를 주는 세례요한이 조각돼 있다..
1500년대 조각가 안드레아 산소비노 가 제작했고 맨좌측 천사상은 1792년 작...
우리는 몹시 두리번 거렸다.. 두오모 광장의 모든 것이 우리를 흥분시켰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다 담아서 갖고 가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바빳다. 사진과 동영상으로 모든 것을 담으려고 했지만 더러는 흘리는 것이 많았다..
두오모의 수많은 조각들 중에는 피렌체를 상징하는 백합꽃 문양이 새겨진 방패도 있었다..
""정말 신기하지 않나?""중세 시대에 이런 건축물을 지었다는게..
여기서 이런거 지을때 우리나라는 뭐 하고 있었을꼬?""
친구 현주가 느낌표와 물음표 사이를 열심히 오갈때 두오모와 세례당 사이로 마차군단이 어기적어기적 지나가고 있었다..
기영쌤이 여기서 자유시간을 주었다..
눈 작고 키작고 코작고 다리 짧고 얼굴은 커다란 우리만 바빠보였다..
마을회관에 놀러온 듯이 두오모광장에 놀러나온 코 크고 다리가 긴 사람들은 두리번 거리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웃고 이야기하고 한번씩 사탕을 빨고 있을뿐...
우린 우아하게 사진을 찍지 못했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이 지나다니던지...
아,,우리는 두오모의 벽 장식 만큼이나 빈틈없이 치밀하게, 정교하게, 박빡하게 정신없이 바빳다
벌써 모이라는 소리가 수신기로 나온다..
우리는 두오모 광장을 빠져나와 시뇨리아광장과 우피치미술관으로 향했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우산을 썻다 안썻다를 반복..
근데 여기사람들은 비가와도 우산을 쓰지않았다.
우피치미술관은 르네상스 시대에 피렌체를 통치한 메디치 가문의 관청이었다..
메디치 가문의 귀공자들이 시뇨리아 광장에서 열리는 행사들을 내다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졌다..
어딜가나 수많은 인파에 섞여 구경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미술관 안에는 들어가질 못했다..공사중이었다.
갈릴레오갈릴레이, 미켈란젤로,레오나르도 다빈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종탑을 설계한 죠또 등등 토스카나 주 출신 위인들을 조각한 조각상들이
서 있었다..1484년에 보티젤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이 바로 이곳 우피치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여기서 기영쌤이 자유시간을 주었다..
여기 벌거벗은 다비드오빠야 고추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포세이돈동상옆에 공사중...
현지가이드고기영쌤과함께...
13~14세기에 시뇨리아 광장은 권력의 중심지였다..
시뇨리아 광장에는 포세이돈 다비드, 헤라클레스 조각상이 시뇨리아궁정(팔라쪼베끼오)앞에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서 있었다..
궁전 전면 중앙 벽에 이탈리아 국기가 게양돼 있었다..
시뇨리아 궁전은 1294년에 지어졌고 1540년 메디치 가문이 이 궁전에 들어와 십년간 살았다 살다가
베끼오 다리 근체에다가 피띠 궁전을 지어 이사한다.현재 시뇨리아 궁전에서는 시민들이 결혼식을 거행하기도 한다.
우리는 피렌체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시뇨리아 광장에 서 있는 조각상들을 전전하며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다비드상,(1501~4년 제작)이다.당시 26세였던 미켈란젤로가 만들었다..
다비드 상의 키는 눈대중으로 대략 4~5미터 쯤 된다.다비드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다윗과골리앗의 다윗이다..
미켈란젤로의 이 다비드는 적군 골리앗에게 돌팔매를 하려고 폼을 자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다비드 조각이 얼추 완성되었을 때 공사의 책임자가 다비드의 코가 너무 높다고 하자 미켈란젤로는 군말없이
다비드의 코에 정을 갖다대고 톡툭 여러 번 깍는 척 하면서미리 손 안에 들고 있던 돌 쪼가리를 아무도 모르게 아래로 떨어뜨렸다..
이것을 알리 없는 책임자는 오케이 사인을 보내며 아주 흐믓해 했다..
시뇨리아광장에 세워진 다비드 상은 행인들의 흉기에 깨지기도 하고 벼락을 맞는등 수난을 많이 겪었다..
그래서 산티시마 안누찌아따 광장에 위치한 아카데미아 박물관에 옮겨 보관하게 되었고 이곳에는 모조품을 세웠다..
우리는 산타 크로체 성당 앞을 지나 피렌체하면 오래전부터가죽제품이 유명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기영쌤이 이곳 유명한 가죽제품가게로 인도하신다..필요한 사람만 사고 안사고 구경만 실컷했다..
쇼핑의 여왕 우리의 회장님이신 미경이는 질 좋은 백하나 득템을 했다..정말 이쁘고 세련된 가방이었다..
면세로 계산까지 완벽하게 하고 정말 싸게 주고 샀다고 다들 부러워 했다..
산타 크로체 성당앞을 지나는데 기영쌤이 말했다..
이 성당 안에는 요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로시나의 무덤이 있다고...
우리는 기영쌤을 졸래졸래 따라갔다..
기영쌤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단테의 생가였다..여기도 역시 그분들이(소매치기)많으니 특히 조심하라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단테생가를 방문하게 되어 무척이나 흥분했다.마치 큰 횡재를 한것같았다..
출입구 앞 외벽에 붙박힌 채 자신의 생가를 지키는 단테의 흉상을 올려다 보니 한성질 하게 생겼다..ㅋㅋ
단테는 고개를 살짝 틀어 여기가 아닌 다른어느곳을 바라보고 잇엇다..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단테생가는 마치 감천문화마을의 좁은 골목골목 미로같은 곳에 있었다..
바닥에 물을 부으니 단테얼굴모습이 나온다.
피렌체 출신 단테는 르네상스의 선구자다. 단테는 현대 이탈리아어의 기초를 세웠고
단테의 저서로는 <신고>이 있다 르네상스(문예부흥운동)는14~16세기에 걸쳐 일어났는데
고대 그리스 로마의 사상, 문학,미술,건축등 다방면에 걸친 문화들을 이상으로 하여 새롭게 재생하고 부활시키자는 운동이었다.
5세기에 고대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시작된 중세는 인간성이 말살된 야만시대
다시 말해 인간의 지적, 창조성이 철저히 무시되고 말살된 암흑시대였는데
고대의 부흥을 통해 이 야만의 시대를 극복하자는 운동인 것이다.
단테로 시작한 문예부흥은 마침내 미켈란젤로에 가서 고대 문화를 뛰어넘게 된다.
단테는 1296년 대통령까지 지내지만 정치적 입장이 불리해져 1300년 유랑의 길을
떠나고 이시기에 신곡을 쓰게 된다. 신곡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선사한다.
신곡에서 묘사한 지옥의 세계는 2백년 후 미켈란젤로에게 영감을
불어넣게 되고 이 영감으로 미켈란젤로는 1541년 '최후의 심판을'완성하게 된다.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단테..
그렇다면 정작 단테에게 시와 신곡을 쓸 수 있도록 영감을 준 존재는 누구었을까.. 바로 베아트리체였다..
아홉살 먹은 단테는 어느 아름다운 봄날에 아버지와 함께 폴코포르티나리 가문의 파티에 갔다가
그 곳에서 처음으로 베아트리체를 만난다.
단테보다 한 살적은 여덟살 소녀 베아트리체는 첫눈에 어린 단테의 가슴에 깊이 새겨지고 만다.
단테는 이후 베아트리체 앓이를 시작하게 되고 자신이 쓰는 시의 대부분에 등장시킨다.
단테는 훗날 신곡의 천국편에서 베아트리체를 거룩하고 숭고한 사랑의 이상으로 표현한다.
베아트리체 앓이를 하던 단테는 그녀와의 첫만남이 있고부터 9년 후 두번 째로 베아트리체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아르노강을 가로지르는 베끼오다리에서였다..
하루도 그녀 생각을 하지않는 날이 없었던 단테는 이 날도 베아트리체를 떠올리며
강변을 산책하다가 베끼오에 섰는데 자신의 눈 앞에 천사 같이
아름다운 베아트리체가 걸어오는 것이었다..
상냥하고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오는 베아트리체!!!!스치듯 너무나 짧은 만남이 있엇고 그러고는 끝이었다..
베아트리체는 곧 자신의 가문에 걸맞는 바르디 가문의 시모네에게 시집을 갔고 24세의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기영쌤은 자신이 마치 단테를 졸졸 따라다닌 목격자나 된 듯이 심취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엔 시간관계상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안해주고 생략할려고 뻗대다가 열심히 귀쫑긋세우는 우릴 보고 썰을 풀어놓았다고..ㅋㅋㅋ
남편과 열심히 통화중인 기영쌤...ㅋ
아쉽게도 로마에서 가이드를 해왔던 기영쌤이랑 여기 피렌체에서작별을 한다..
신랑이 자가용으로 모시러 왔단다..
기영쌤은 15년전에 이탈리아유학생으로 와서 이곳에서 남편을 만나 지금까지 이탈리아로마에 살고 있다고 했다.
어느덧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우리들은 모든것들이 충만했다..
역사와 신과 자연과 피렌체로부터 사랑받고 있었으므로,ㅋㅋ
우리를 실은 버스는 베네치아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나지막한 동산 꼭대기에 아주 작은 성채가 보였고 이내 어두워졌다..
(베네치아에 도착했을땐 이미 한밤중이었다..밤8시반쯤)
서둘어 호텔숙소에서 짐풀고 식당에서 저녁먹고..
호텔로비는 우아했다..
이곳은 어디서나 전기를 너무 아끼는것 같았다..
어두침침해서 잘 보이질 않았다..
콘셉트가 잘 보이지 않아 잘 못 꼽아 전원이 다 나가버리는 불상사를 내가 만들어 버렸다..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