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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유럽에 있었다..4(바티칸시국)

by 나그네김 2018. 12. 5.

2018.10.29(월)

 

새벽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비소리에 잠이 깼다.

여기까지 왔는데 비온다고 안갈수도 없고 일단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내려간다.

식사도중 임팀장이 하는말에 집중하면서 먹었다.

 

(호텔식당)

 

이미 현지 가이드가 와있었다..

7시까지 호텔앞 버스에 오란다..

버스에 올라타니 이태리아저씨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이어서 현지가이드소개와 함께 이동하는 버스안에서 이탈리아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현지가이드 이름은 고기영이라고 했다.

난 그냥 기영쌤이라고 불렀다.

 

(로마시내로가는 버스안..고속도로가 많이 막힘)

 

기영쌤의 이탈리아 이야기:저기 앞에 A1 36이라고 나오네요.보이시죠.A1 고속도로의 36번 교차로라는 소리예요

저 표지판이 있는 곳은 반드시 위에 도로가 있다든지 다리가 있다든지 하는 교차점이예요. 자 저것은 이탈리아에만 있는 독특한 표지판 중의 하납니다.

그 이유가, 왜 저걸 해놨느냐, 무슨사고가  생겼어.나 A1 고속도로 36번 교차점 근처에서 사고났어 그런 디테일하게 알려 줄 수가 있잖아요

저 표지판이 만들어진 이유는?근데 이탈이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유럽 사람들은 축구에 미친 사람들이에요.미친 사람들

축구 경기가 열리잖아요 그러면 축구장에는 이미 경찰들이 바리케이드를 쫙 쳐요. 거기서 지는 팀들이 이제 폭동이 일어난거야.

그래각꼬 난리가 나거든. 그 축구장 옆에 경찰들이 진을 쳐. 막 축구장 근처로 들어오는 도로에서는 미리 검문을 해요.

애들이 무슨 무기나 몽둥이 같은 거 들고 들어올까봐  자기네가 지면 난리가 나거든, 괜히 막 심판 잘못했니,어쨋니 이러면서

유럽 애들은 완전 축구에 정신 나간 사람들이예요. 

이동네저동네 축구하다 지잖아 그러면 화풀이 폭동이 일어나서 싸우다가 어쨋든 이 다리위에서 지나가는 차들한테

돌 던지고 깡통 던지고 난리가 납니다.

실제로 이 밑에서 교통사고에 많이 나요 그래서 저 표지판을 세워놨대요.

이탈리아는 유독 다른 유럽나라와 달리 지역감정도 심해요.어느정도냐?이틸리아 사람들은 굉장히 재미있는 사람들이에요.

여러분 우리는 외국가서 누가 너 어디사람이야 하고 물어오면 뭐라고 대답해요? 너 어디서 왔어? 그럼 뭐라고 대답하죠?코리아~! 그쵸?

근데 이탈리아 사람들은요 너 어디서 왔어?그러면요 밀라노!나폴리!나 베네치아사람이야 나 베네치아에서 왔어.

 나 밀라노에서 왔어.절대로 먼저 이탈리아라고 말이 안 나옵니다.

지역감정이 어마어마합니다. 오래전 우리가 경상도 전라도 그런 새발의 피예요.

 

지금도 그래도 지금도 몇몇 도시들이 이탈리아에서 독립하려고 그래요. 자 그럴수 있는 이유가?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이 안되죠

여러분 경상도가 우리나라에서 독립한다 그래봐요.저것들이 정신이 나갔나 이러죠.

전라도가 독립한다 그래봐요 쟤들 왜 저러나 그러죠.근데 여긴 그게 가능해요.왜? 이 땅덩어리는 예전에 로마제국 이었습니다.그쵸?

로마제국은 기원 후 476년에 완전 멸망해서 문을 닫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프랑코왕조가 일어납니다.프랑코왕조가 또 400년간 통치를 하죠

프랑코왕조 후에 신성로마제국으로 오면서 이 유럽 땅떵어리는 교황님의 권력이 강해지면서 11세기에서 13세기 8차에 걸쳐 십자군 원정이 있었습니다.

십자군원정에 의해서 이 교황청 권력이 강해지면서 황제들의 권한이 약해집니다.

그러면 이 지방 영주들의 힘이 강해져요. 십자군원정과 맞물리면서 십자군원정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전쟁에서 실제로는 약탈에 가깝죠.그러니까

이 도시국가들을 십자군원정에 참여를 해가지고 약탈해서 갖고 온 전리품들 그 다음 무역,

이런 것들로 인해서 돈이 굉장히 많은 도시국가가 본격적으로 발전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3일후면 가게될 밀라노가 대표적으로 그때 발전을 했던거죠.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돼요? 도시국가의 출현으로 그들이 잘 살다 보니까 베네치아 공화국, 밀라노공화국, 제노바!이런 도시국가가 돼버리는 거지요.

그러다가 그게 언제 다시 통합됐다그랬어요? 나풀레옹 시대가 끝나고 그러니까 이들이 아직까지도 오랜 세월동안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나서 오랜세월동안

자기네 동네끼리만 살았던 사람들이에요.그러니까 습관적으로 나는 베네치아사람 밀라노사람 자기의 지방, 자기네 거기에 대한 프라이드가 굉장히 강해요.

ㄱ래서 이 나라사람들은 절대로 이탈리아사람이야 라고 먼저 안하죠. 그게 재밌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하나의 특징입니다.

 

 

(혜영과나..기록남기기에 맹활약중)

 

자,, 이탈리아 땅덩어리는요 우리나라 남북한 합친 한반도의 1.5배에 달하는 커다란 땅덩어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 땅덩어리에 인구 5천8백만이 넘어요.6천만에 육박하죠 우리남한은 5천만이죠.이탈리아 인구 당 소득수준은 3만5천불입니다.

자 그럼 3일후에 갈 밀라노5만불이 조금 넘고요.베네치아 7만불쯤 됩니다.그걸 깍아먹는 곳이 어디냐 남부다.라고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이 북부에 잘 사는 도시사람들이 불만이 생겨요.

왜 내가 낸 세금으로 저쪽 남부 사람들은 너무 저소득층이니까 세금도 거의 안 내고 자기네가 낸 세금으로 교육혜택 이런

걸 받고 산단 말이예요.그러니까 어때요.불만이 생길 수 밖에 없겠죠.당근 생기죠 불만이.

그러니까 북부, 밀라노사람들 베네치아사람들은 남부사람들 보면 뭐라그래요?저런 게으른 것들~일 좀 하지.

저것들을 우리가 먹여 살리네 뼈 빠지게 일해서..

그럼 남부사람들은 뭐라그래요? 저런 오만한 것들. 가진게 있으면 좀 나눠가져야지 이거예요지금.

그러니까 기후대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도달라요,우리나라 사람들도 제주도 사람 다르고 경상도 사람 다르고 위에 충청도 다르고 다 다르잖아요.그쵸?

오죽하면 땅덩어리의 길이가 1천4백 킬로미터니까 더 하겠죠.

그러니까 사람들 살아가는 형태도 마인드도 다르고 그러다보니까 북부사람들이 남부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는 얘기가 나와요.

 이 북부사람들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아..이거 불만이다. 그래서 북부의 몇볓 도시들이 이탈리아에서 독립을 해 버릴까 이런얘기가 나오는 거에요.

이건 물론 결론 난 건 아무것도 없어요. 예전부터 그런 얘기가 스스로 나온 거지 정책적으로 뭐 독립하고 이런 건 아니예요..

우리나라로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거..

하지만 이들은 가능하다는 거. 왜 또 가능하냐? 자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단일민족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단일민족 단일국가가 아닙니다.워낙 수많은 하나의 제국,

수많은 하나의 통치권자들이 통치를 하고 관리를 했던 지역이기 때문에 혈통이 굉장히 많이 섞였어요.

너무나 커다란, 예들면 로마제국 또 그담에 프랑코왕국 이들이 한 정치권에서 같이 통치를 받았던

사람들이니까 생활상도 비슷하고 혈통도 많이 섞이고 그러니 민족의식이 강하지가 않은 거지요.예..

그러다보니까 그게 가능하단 말이죠.자. 로마제국이란 도데체....주무실거죠? 또 이렇게 얘기 시작했는데!!!""

하기사 새벽에 나왔으니 잠도 올수밖에..ㅋㅋㅋ

기영씨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는데 기영씨가 말을 딱 끊더니 무다이 시비를 걸어왔다.

"아니요"

 

우리는 소리를 높였다..

 

"으ㅡ흐흐흐흐흐흐"

 

갑자기 기영씨가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자는 줄 알고 경계했는데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으니까 웃음이 터졌나 보다.

 

"자 고속도로라 제가 서 있을 수가 없답니다.. 우리 손님들을 감시를 할 수가 없군요.

자.오메오메오메!!! 우리 차에 기가막힌 게 하나 있네.

차가 좋치요?""

"예"

"차가 좋다보니까 기능이 한 가지 있네요. 손님들이 절반 정도 주무시면 마이크가 저절로 꺼져요.""

""예"??

"그러니까 알아들 하셩""

""에이ㅡ 거짓말...농담?""

우리는 반신반의했다..

""아유, 순진한 우리 손님들.. 어떡하면 조티야 이히히힣..우리 부산언냐들 어떡하면 조아"""

""속았다>""

"으흐흐흐흐흐흐흐흐....."

기영씨는 그렇게 한참을 웃고는 지루한 역사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일정표를 짚어준다고 하더니 일정표 인쇄물의 지도를 펴보라고 했다.

하지만 일정표를 소지하고 있는 손님은 절반이 안 되었다..

""거 봐라봐라바라..큰 가방에만 넣어 다니는 소장품이야 소장품.아주!!

내가 물었다..기영쌤 고향이 어딘교? 저유 충청도래유""

근데 왜 이렇게 말이 빨라요..역사이야기 할때 몬알아 묵겠으요..

 

기영씨는 표정을 싹 바꾸고 우리를 혼 낸 다음. 일정표에 그려진 이탈리아 지도를 보여주며

우리가 이동할 투어 순서를 서 있는 자신의 인체에 대입시켜 재밋게 설명해 주었다..

로마는 몸 중앙의 옆구리쯤 되겠습니다..

"아...얘쁘다. 사진 좀 찍자.

나는 늘 그랬듯이 바깥 풍경에 마음을 빼겼다..

동영상과 사진들 동시에 마구마구 찍어댔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고속도로 강변을 달렸고 드디어 로마로 입성했다.

나는 열렬하게 로마시내에 한눈 아니 두눈을 팔았다..

두 귀로 기영씨의 설명을듣고 두 눈으로 로마를 보고 있는 이 순간은 열정적이었다..

나의 시청각기능과 컨디션은 최고조에 달했다..

기영쌤..저거 무슨강이랬으요?떼베르강 아~~

 

떼베르강을 사이에 두고 천년의 시간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 같은 건축물의 잔해가 여기저기 자주 눈에 띄었다.

바람만 불던지 비만 오던지 둘중 한가지만 해야 구경하는데 그나마 수울할건데 이노무꺼 둘다 불어재끼니 정신을 못차리겠다..

건축물들이 천년이천년동안 때가 묻은 것처럼 보엿다..때 묻은 로마에 폭우가 쏟아졌다..

때 묻은 로마에 지금까지 때를 묻히며 살아가는 로마의 현대인들의 자부심과 자존심이 대단하였다..

 

비씨카드가 왜나와? BC753년에 로마를 세운 로물루스 형제가 떠내려 왔었던 떼베르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이 고색창연해 보였다..

기영씨는 떼베르강물 위로 건설된지 2천년이 넘는 다리들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수 천년의 역사의 숨결이 살아 쉬는 로마를 제대로 둘러보는 데는 석달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단 하루만에 로마를 돌아버리기로 했다.. 버스는 바티칸 시국으로 향했다..

 

 

 

 

입구에는 줄이 마치 큰 아나콘다가 똬리를 틀며 꿈틀거리는 모습이다..

전세계인들을 여기로 끌어들이는것이 과연 뭘까...

 

 

바티간 시국은 나라안의 나라로 로마시 안에 있다..

면적은 0.44제곱키로미터이고 인구가 천 명이라고 하는데 붙박이 인구는 아니고 바티칸을 직장으로 하는 종사자들이 대부분이란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바티칸 시국의 성벽 바깥에 줄을 섰다..

비티간 전체를 둘러싼 이 성벽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845년 외세의 침략을 받은 이후 쌓은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고 우리는 줄을 서서 기다렸다..

 

저 성벽너머에 어떤 놀라운 것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 놀라운 모든 것들을 기영쌤이 하나하나 알려주시겠지.

기영쌤이 바티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데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 수신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엥엥거려 도저히 들을 수가 없었다..

뭐 무솔리니가 나오고 정권을 잡았는데....어쩌구저쩌구 바티칸 교항청하고 화해를 했다는 말도 나오고

이탈리아 왕국 통일되고 60년 이상 그냥 내버려 뒀다는 말도 나오고 그래서 교황청을 나라밑에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종교를 나라 위로 모신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거고 어떻게 하면 제일 좋으냐 아예 독립시겨서 나라를 만들어 주고

그 나라에서 교황청이 있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으로 느껴지는데요.그러면 나라를 어디 딴 데로 옮기십시오,

건물 새로 지으십시오,해서 될 일도 아니고 그냥

로마 시내에 있되 교황청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오늘날의 저 바티칸 궁전지역들을 교황청의 따으로 딱 묶어서

독립을 시켜줬는데 너무 좁아요 너무 좁아서 그 정도 가지고는 나라하기가 어려울 거 같고요.

그리고 로마시내 한복판 지역에 독립적인 지역이 있어봐야 어떻게 보면 온 사방이

로마, 이탈리아에 가뎌있는 형상이 되어지니까 고립된 섬 같은 거예요,

우리로 따지면 맹지, 나오면 남의 나라니까 그래서 교황청의 사람들은 밖으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나오되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 좁은 교황청지역으로 아무나 못 들어가게 일단 들어오고 나가는 거에서부터 차별을 두는 거죠.여기까지만 똑똑히 들었다..

그리고 교황청님이 여름에 휴가 가셔야 하니까 여름에 하계휴가 갈 별장 두개를 같이 돌려드리겠습니다..

그 유명한 카스켈간돌포를 돌려드립니다...기영쌤은 1929년에 있었던 라테란 조약의 내용을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었다..

 

줄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기본 2시간이라는데 우리는 기영쌤의 기발한 행동으로 30분만 서서 기다려서 바티칸에 입국했다..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하고 이어폰이 달린 바티칸 전용 수신기를 지급받고 에스컬레이트를 탔다.

본격적인 관람공간에 들어섰다..비는 계속 내렸다..우리는 우산을 쓰고  바티칸박물관의 조그만 뜰로 나갔다..

우산을 한 바탕 적시고 다시 들어와 기영쌤앞에 모있다.

 

그 유명한 바티칸시국의 솔방울정원..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더이상 있을수가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기영쌤은 빨강색우산을 흔들어 보이며 우리들을 항상 유인했다..

 

 

 

우리들을 데리고 박물관 로비를 우왕좌왕했지만 번뜩이는 재치로 무료로 화장실로 갔다오는 찬스도 얻고...

세계각지에서 모여 든 사람들이 그룹으로 여기저기 서서 또는 앉아서 귀에 꽂은 수신기 어어폰으로 가이드들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우리가 여기 온 목적은 딱 한가지란다..

이곳 박물관 안의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과 벽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두 작품'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보기 위함이래도 과언이 아닐정도란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 고대 로마제국의 광활한 영토를 넘나들었던 예술가들과 역대 교황들의 이름이 나오고...

비가 너무많이 와서 바티칸 솔방울정원이 있는 밖은 더 이상 나가지 못했다..

바티칸 박물관은 바티칸궁전을 박물관으로 만든 것이었다..

 

 

 

 

 

 

 

 

 

 

 

 

 

 

 

 

 

벨베데르 궁 안에 있는 피오클레멘티노 미술관으로 이동했다.. 이동 중간에 끼어있는 끼아라몬티 전시관을 구경했다..복도식이었다

이곳에 전시된 각종 조각품들은 기원전 후 1~2백년된 작품들로 1000여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 공간은 이탈리아 고대사를 연구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장소이고 이 전시품들은 모두 진품으로 가치를 돈으로 매기면 하나에 1억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우리는 수많은 1억원의 조각품들을 무심하게 지나쳐서 피오클레멘티노 미술관으로 갔다..

 

 

 

 

 

 

 

피오클레멘티노 미술관에 있는 라오콘과 두 아들의 조각상을 본다..

기영쌤은 이 조각상앞에서 많은 설명을 했지만 귀에 속속 들어오질 않았다..

라오콘 조각이 품고 있는 배경이야기도 드라마틱하지만 이 조각상을 발견한 뒤 일어난 일들도 흥미진진했던것 같았다..

일단 모르겠고.

 

홀의 중앙에 떡하니 위치한 피오클레멘티노 전시관의 꽃""토르소" 조각품을 본다..

15세기에 발견된 토르소는 아킬레스의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아폴로니우스라고 하는 아테네 사람의 작품이라고 한다.

비씨 백년에 만들어 졌는데 이때 우리나라는 고조선이 멸망 할 때 쯤이다..

도데체 토르소의 팔,다리,머리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지도의 방에서 기영쌤은 이탈리아 역사지도를 보며 지도가 품고 있는 역사를 하나하나 풀어서 들려주었다.

지도의 방 복도를 지나 아라찌의 복도에는 거대한 카페트가 많이 걸려 있었다..

카펫은 모수 예수의 일대기를 표현한 성화로 가득찼다.

이것들이 모두 그림이 아니라 색실을 넣어 짠 것이라니!!! 놀랍도록 정교한 작품에 그만 놀라서 턱이 빠질 지경

바티칸박물관입구부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한 달 내내 구경을 해도 다 못할 바티칸 박물관을 두 시간동안 끝내고 드디어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갔다..

시스티나 예배당을 끝으로 바티칸 박물관 구경은 모두 끝이 난다.

 

예배당으로 가는 복도가 계단으로 이어졌고 계단은 지하로 향했다. 극비리에 만들어진 요새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이 그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디곳을 둘러보는 동안은 사진촬영금지와 절대정숙엄숙이 요구되었다..(어길시엔바로쫒겨남)

천장의 그림은 프레스코화로 그려졌는데 이것이 단순한 붓질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벽에 물감이 스미게 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벽에 회반죽을 바르고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물감을 먹여야하는데 이토록 어려운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보존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라고....

1508~1512년 동안 민켈란젤로는 바로 이 천장에 매달려서 교황의 개입을 차단하고 자신의 의도대로 천장화를 그린다. 미켈란젤로는 천장을 9개의 틀로 나누고

9개의 틀을 다시 34개의 면으로 나누어 창세기의 내용을 그렸는데 천장의 중앙에다가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는 최초의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를 공평하게 표현했다. 미켈란젤로의 아담은 하느님과 평등하다 못해 잔뜩 거만해 보인다.천장에 매달려 작업을 하면서도 미켈란젤로는 점 하나라도 대충 찍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옆에서 이런 미켈란젤로를 지켜보던 조수가"누가 자세하게 본다고 이렇게 세밀하게 그리십니까?"하고 하자 미켈란젤로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내가 보잖아!!""

 

나는 무려 높이 20미터가 넘는 천장에 그림이 너무 많고 목고개도 아퍘지만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감동이 저절로 밀려오는듯한 벅찬 감정을 억누를 방법이 없어

종교를 떠나 조용히 눈을감고 기도를 올렸다..

천지창조를 보고 있는 내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벅찼다.

천장에서 눈을 돌려 벽화를 보았다..미켈란젤로가 1534년에 그린 '최후의 심판'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예수를 나체로 표현했다..

젤로는 이그림 속에서 천사들로 하여 흑인노예둘을 하늘로 인도하도록 했고 젤로는 박애 평등주의자였던 것이 틀림이 없었다..

천장화'천지창조와 벽화'최후의 심판'은 서서히 그을음과 때에 묻혀서 오랜동안

그림본연의 아름다움이 감춰져 있었는데 일본방송NHK의 자금력으로 1980~1994년까지 세정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촬영을 할 수도 없고 감상을 주고 받을 수 없고 마냥 예수님의 알몸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도 없어서 나는 조용히 베드로 대성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얼마전 문재인대통령내외가 오셔서 미사를 드렸던 성당이다..

보고느낀감동을 잊어버릴까봐 나오자마자 메모하고 녹음을 했다..

 

베드로성당에 들어서자 비탄의 제단에 피에타 상이 보인다..

성모 마리아께서 십자가에 묶여 죽임을 당한 예수님을 끌어안고있는 모습니다.

우리는 차마 당신의 아들을 바라보지 못하는 성모님의 모습에 한동안 숨을 죽인다.

피에타를 방탄유리로 막아놓았다..

 1972년 어느 정신 나간 방문객이 피에타 상을 훼손시키는 바람에 피에타상을 서둘러 복원하고 이렇게 안전장치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1499년 미켈란젤로가 24세때 만든 작품이다..

 

피에타...

 

 

 

 

 

1624~1632년 동안 베르니니가 만든 바로크 풍의 '천개'다 천개는 하늘을 덮는 덮개라는 뜻이다.

 

베르니니가 제작한 이 천개는 베드로 성인의 무덤 덮개이다.이곳이 성당의 수 많은 제단들 중 주 제단이며 천개의 바로 아래가 성 베드로의 무덤 되겠다.

베르니니는 이 천개를 만들기 위해서 판테온 신전의 입구와 천장의 동판을 뜯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었다고....

 

천개 바로 위 천장의 돔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돔의 높이는 136.5미터다 올려다 보고 있으면 너무나 아득해서

실제의 높이를 가늠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데 빌딩15층 높이쯤 된다고 한다.

537개의 계단을 걸어서 돔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베드로 성당 내부의 높이가 되겠고 성당 내부의 길이는 187미터니다 세계최고 크기의 이 성당은

6만명을 수용 할수 있다고 한다.베드로 성당의 돔은 현존하는 돔 양식중, 채광장치가 제일 잘 돼 있다고 한다.

돔의 둘레에 라틴어가 빙둘러 새겨져있는 것이 보인다."너는 반석이며 이 반석의에 나의교회를 세우며 너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노라"는 뜻이라고 한다.

 

 

 

성베드로성당내의 모든 그림은 모자이크로 되어있다고 한다.

보존력이 좋기 때문이란다. 그림 아래의 교황의 시신이 모셔져 있다 이탈리아의성당들은

예배를 드리는 곳이기도 하지만 성인들의 무덤으로 사용되는데

우리가 지금 둘러보고 있는 베드로 성당도 베드로의 무덤위에 지어진 것이다.

 

 

 

예수 승천의 제단이다.이것은 모자이크 기법으로 만들어졌는데 라파엘로가 그린 원본은 바티칸 박물관의 회화관에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시신들을 두고 패가 갈렸다..교회를 다니는 경희와미경은 실제 시신이라고 우기는파와

그냥 상징물이라고 완강하게 우기는 나의파인 혜영과핸주와나

나중에 기영쌤 한테 물어보니 실제 시신이라고 했다..

카톨릭에서 시신을 보존하는 이유는 부활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고 한다..

 

 

(왼쪽.경희 현주 나 미경 혜영)

 

순례를 마치고 바깥으로 나오자 광활한 광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당옆 출구에 스위스 근위병이 비옷을 입고 보초를 서고 있었다.

바티칸의 근위병은 백여 명으로 모두 스위스 인들이다.임무는 교황의 신변보호다

교황청은 로마의 주교이므로 경찰로부터도 보호를 받는다.근위병의 제복이 비옷에 가려져 있었는데

근위병이 입고 있는 줄무늬 옷은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고한다.

 

광장 한가운데에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다..해가 보일 때 오벨리스크는 해시계의 역할을 한다.

 

 

오벨리스크의 양쪽으로 둥글게 회랑이 위치해 있다. 회랑을 떠받치는 저 기둥들을 세어볼까하다 시간상 패스하고 기영쌤의 설명을 들었다..

저 기둥들은 모두 284라 한다. 기둥의 높이는 15미터 기둥 위로 성인 조각상도 있다.모두 140개란다.

모두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만든 조각상이다.

 

 

기영쌤이 수신기로 우리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

부르는 장소에서 우리가 지나온 곳을 뒤돌아 보았다..

베드로 성당의 전면이 이제서야 한눈에 들어왔다.

성당의 전면위에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이 비를 맞고 서 있다..열 두제자 중에 열쇠를 쥐고 있는 조각상이 베드로라고 한다.

 

 

(여행에 굶주린 답답한 영혼들과 함께..ㅋㅋ)

 

 

성당의 전면에는 다섯 개의 문이 있다..정중앙에 위치한 문 위쪽 발코니가 교황이 강복을 내리는 곳이다.

이가운데 문은 1445년에 청동으로 만들었는데 실제로 열리는 않는다고 한다.

맨 오른쪽 문은 성문(聖門)으로 50년마다 한번 씩 열렸는데 지금은 주기를 앞당겨 25년 만에 한 번씩 열린다고 한다..

맨 왼쪽 문이 장례식을 마친 시신이 나가는 '죽음의 문'이다 죽음의 문은 다섯개의 문중에 가장 축복스러운 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방금 저 죽음의 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왔다..

 

이 짦은 시간에 마치 우주를 구경한 것 같았다..모든것들이 위대해 보였다..저 로마의 하늘도 유럽도 조금전쏟아진폭우도 위대하게 느껴졌다..

베드로 대성당에서 죽음의 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온 나는 기적을 만난느낌이었다..

나는 이미 기적을 보았으므로..내가 여기 이자리에 서있다니 자체가 기적인 것이다.

 

바티칸~~참으로 대단한 하나의 거대한 문화재다

대단한 예술을 남긴 미켈란젤로를 알게 되었다.

난 천주교인도 아닌데 경배하는 나의 영혼을 느꼈다..거룩한 성전 앞에 압도되어 기를 펼수가 없었다..

사진을 찍고 또 찍고

 

우리는 이제 바티칸시국을 출국해서 로마시내로 점심을 먹으러간다.메뉴는 정통 이탈리아피자와스파게리.